예수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중심적인 무례가 아닌 상대만을 위하는 예의다.. (요즘 이 부분 때문에, 나도 마음 상하고 또 갈기갈기 찔리고 찢기고 있지만, 나를 먼저 가르치시는 예수의 뜻을 알기에 自敎하는 심정으로 간략히 쓰려한다.) 나는 예수의 사랑의 예의를 통해, 고린도전서 13장5절에 무례를 말하려 한다.. 나는 성경에서 인간에게 예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본다.. 창세기..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신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니 먹지 말라."..고.. 저건 절대 경고가 아니다.. 사랑의 예의다.. 그것을 먹은 결과에 대해 인간이 품을 당혹스러욱과 의혹을 덜어주기 위한 사랑의 예의.. 성경에 나타난 인간의 모든 그릇된 일들에 대해 주어질 결과와 일들을 미리 알려주신 모든것이 마찬가지다. 인간의 제한된 모든 약한 것을 아시기에.. 아무 말 없이 인간의 잘못에 대해 먼저 벌부터 내리지 않으신다. 그것이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지키시는 사랑의 예의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사랑의 예의는 인간의 잘못에 대한 형벌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필요한 그래서 허락하시고 주시는 은혜와 축복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복음서를 보면, 여러 기사에서 예수는 병자들에게 말씀 하신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라고 말이다. 바로 이 말씀에서 영어의 "May I help you"..란 표현의 말이 나온 것이며, 바로 이 말씀을 통해, "장애인당사자주의"란 사고가 나오게 됐다. 진짜 상대를 위한 사랑은, 결코 무조건 도움을 주는게 아니다.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상대로부터 그 정보를 듣고 얻어서 그것을 상대가 원하는 방법으로 또 상대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그것으로 주는 것이 예수의 사랑이며, 그를 위하는 사랑의 예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떠한가.? 우리 모두는 어떠한가.? 상대를 위하는 사랑의 예의가 아닌, 상대의 처한 상황과 입장은 생각도 안하고, 상대가 원하는 접근 방법이 아닌 자기 생각과 방법으로만 그에게 접근하려 하고 그를 알려한다. 그게 나와 우리의 자애(自愛)의 그릇된 모습이다.. 바로 이 안에서 무례의 모든 행위가 발생한다. 고린도전서 13장 5절은 말씀한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라고.. 그런데, 저 문장의 근본 뜻은 단순히 '예의없이 행하지 않는다'..가 아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라고 기록하고 있다. 저 문장의 뜻을 의역을 한다면, "자신을 위하는 흉한 의도로 행하지 않는다"..로 해석 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상대를 위하는 사랑? 없다. 그 사랑안에 있어야 하는 상대를 위한 예의? 없다. 고작 있는건 대인관계 유지와 자기 채면 유지를 위한 사화적 약속에 의한 행위일 뿐이다. 상대를 위한 그 어떤 의도도 찾을 수 없는게 나와 우리다. 바로 이것이 사도바울이 지적한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사랑이 없이 무례히 행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남의 약점을 잡기 위해 사생활을 몰래 염탐하는 것도 예의 없이 무례히 행하는 것이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진실한 말과 대화로 해결해야 할 일을.. 자신만을 생각해서 타인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이 또한 상대의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이 곧 무례히 행하는 것이다. 똑바로 보라. 나와 우리.. 진정 상대를 위하는 사랑이 있는가..? 다시 스스로에게 묻자.. 예수의 심장이 내게 들어오려 하기에..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인들의 저런 그릇된 모습들이 겉으로 표출되도록 한 원인이 내게 있기에, 나는 사죄한다.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모두에게.. 내가 한가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죄했듯이 그들도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얽매임 없이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상대에게 사죄하길 바란다.. 그것이 예수사랑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