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씀..]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5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요한계시록 2장 18절~29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 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오늘은.. 예수의
사랑으로, 다시 묵상하는 산상수훈과 팔복, 여섯번째 복, 마태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에 대해 묵상하려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팔복을 해석하고 말 할 때, 흔히 저 팔복의 조건들을 사람들과의 관계은 외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만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이룰 때 주어지는 복이라 생각하고, 가르치고, 배워왔다.. 오늘 묵상 할, 마태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이 구절 또한 같은 시각으로 보고 이해하려 드는게 사실이다.. 허나. 다섯번에 걸친
팔복에 대한 묵상을 통해 설명했듯이, 산상수훈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람을 위한 사람수훈이며, 또한, 팔복은 산상수훈의 서론으로써 마태
5장 13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으로, 팔복의 조건들의 사람이 되어지는 구체적 삶의 모습과 방법은 예수의 계명, 곧, 사랑으로 연결되며, "이러한
복 있는 자"들의 삶의 모습과 태도와 방법은, 곧 '이것이다'를 말씀하고 계시기에, 결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오늘 이 구절도 같은 관점에서 묵상하려 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흔히, 우리나라 교회의 목회자들은, 마태 5장 8절, 이 구절을 마음이라 했다해서, 개인의 신앙과, 도덕적,
윤리적인, 정신과 의식상태라고만 보고, 개인의 성결과 내적인 깨뜻함(청결,정결)만을 강조해서, 회개를 통한, 과거를 버린 상태로 말하고 강조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원문을 통한, 단어의 뜻을 생각하고, 산상수훈의 전체적 맥락으로 본다면, 결코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우선, 저 구절에서 '마음'과 '청결'이라 번역된 헬라어의 단어의 뜻부터 생각해 보려 한다. 마음이라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카르디아' 라는 단어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히브리어든, 헬라어든, 어떤 특정 단어라 하더라도, 그 단어에 들어있는 의미와
뜻은, 어근과 문장에 의해서, 수 많은 뜻이 내포 될 수 있다.. '카르디아'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단어의
뜻은 단순히 마음, 곧 영어로 heart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사랑, 정신, 생각, 감정, 사고방식, 의도, 잠재의식, 행위, 즉,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지,정,의 가 다 포함된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히브리어로 마음을 뜻하는 단어인 '레브' 라는
단어의 뜻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청결'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카다로스'인데, 이 단어의 뜻은, 보통은, 깨끗함, 순결함, 정결함으로
말하지만, 근본적인 의미와 뜻은,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고, 완전히 비워져 청소된 상태며, 자신을 위하는 거짓이 없는 진실한 진짜'
를 뜻한다. 깨끗함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타헤르'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 또한 청소되어져 완전히 비워진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같은 마태 5장인, 27절~30절과, 구약 잠언 4장 23절을, 위에 구절과 대조해보자.. [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우선, 잠언 4장 23절의
'지키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솨마르' 라는 동사인데. 이 단어의 원래적 뜻은, '지키다'가 아닌, "주의를 주고 계속
관찰하다, 시중들고 보살피다, 조심하다, 보호하고 보존하다, 준수하다".이다. 히브리 원어 성경에서, 잠언 4장 23절의 저어 '지키다'
라는 표현이 맞는 뜻이라면, '솨마르' 대신 '카다쉬'나, '타마' 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저어 두 단어가, 사전적
의미로 볼 때, 경호, 지킴, 수비를 가르키는 영어 단어 guard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구절에서 '솨마르' 를
사용했다는 것은, 단순히 경호, 지킴, 수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 구약성경을 통해, 번역되어진,
킹제임스 성경은, keep 이라고 쓰고 있다. 즉, 모든 열심을 다해서 계속 유지하고,보존하고,조심하라는 뜻이 들어 있는 '솨마르'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맛소라 원문성경보다 후대의 기록된, '70인역'성경을 통해 번역된
NIV성경은 keep이 아닌, guard로 쓴것을 볼 수 있고, 우리 개역성경도 이를 따라가서 '지키다'로 표현되어 있다. 이 두
영문 성경에, 잠언 4장 23절에서, "마음을 지키라"는 이유도, 다르게 표현하고 있기에, 이 부분은 차후에 언급하겠지만, 우선, 이
글에서는, 잠언 4장 23절의 히브리어 '솨마르'라는 단어와, 마태 5장 8절의 헬라어 '카다로스'라는 단어를 연결시켜서 오늘의 주제를 생각해
보려한다. 카다로스..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고 완전히 비워져 청소되어진
상태며, 자신을 위하는 거짓이 없는 진실한 진짜'.. 솨마르.. '모든 열심을 다해서 계속
유지하고,보존하고,조심하라'.. 그런데, 저어 잠언 4장과, 마태복음 5장에서 쓰인 저 두 단어의 원어적 뜻이, 마치 한 문장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흔히, 은사주의자들은.. 잠언의 저 구절을, 긍정적 사고와, 긍정적 생각을 하라는 뜻이라며, 저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수없이 본다.. 하지만, 저 구절은, 인간의 신념이나 의지, 생각이나 사고를, 좋은 쪽으로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간음을 하고,
살인을 한 사람이, "나는 죄없다. 나는 의롭다" 라고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고, 죄인 아닌 사람이 될 수 있고, 형벌을 면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자기 회피, 자기 기만, 자기 속임일 뿐 긍정이 아니다.. 구약에서 저어 '솨마르'라는 단어는 십계명(율법)을 지키라. 라는 구절에서부터 시작된
단어이다. [신명기 4장 5절~9절..]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잠언의 '마음을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곧, 로마서8장의 바울의 표현데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계명으로 깨끗해진 너희 마음을 모든 악으로부터 조심하고, 지키고, 보존하고, 유지하라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하고, 잃지않게 조심하고, 끝까지 유지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으로 회복된 그 형상이,
생명의 증거이기에 말이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형상을 회복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
타락이후 아담과 하와가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이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타락의 근원이요, 속성인,
자아애(自愛)가 근본적으로 사람에게서 사라진 상태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카다로스'의 원어적 뜻과, '솨마르'의 원어적
뜻이, 한 문장처럼 느껴지고,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지난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팔복의 각 구절들은, 각각 따로
떨어진 구절들이 아닌, 서로 연결고리로 이어받는 구절들이다" 라고.. 자아, 마태 5장 8절을 다시
보자..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이 구절도, 바로, 전 구절인 7절을 이어받은 구절임을 말하고 싶다. 나는 긍휼의 복에 대한
글에서.. "예수의 긍휼은.. 자신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향해, 혀나 쯔쯔 차면서, 안됐다는 식으로 감상적 눈물이나 흘리는, Sympathy, 즉, 동정이 아닌, 그의 고통속에
들어가, 그와 같이 느끼고, 그와 같이 아파하고, 그와 같이 동참하는 empathy, 즉, 공감이다.. 이 고통은 창자가 들끊는
고통이다... 다른 이들을,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 위해, 스스로 겪는 고통.. 이것이 예수님의 긍휼의
고통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8절을 통해서 예수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걸
깨닫는다.. "참으로 저들을 위해, 저들의 고통에 동참해주고 싶다면, 너를 위한 그 어떤
의도나 바램이 없이, 진실할 수 있도록, 오직, 내 사랑으로, 니 속을 깨끗이 비우고 청소하라.. 그래야, 오직 저들을 위해, 저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 이것이 내 사랑이다. 그러면, 내가 보일 것이며, 또한 이것이, 니가 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청결하게 보존하고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절 또한
13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으로 들여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해서 청결하라'가 아니다. 예수의 사랑(계명)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사랑)을
회복하고 이뤄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지켜야 할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목적이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태 5장 8절은, 마치, 음악의 딸림 화음과 같이, 5장 3절, 심령의 가난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예속된
구절이란 것이다. 즉, "다른 이들을 온전히 그를 위해, 그를 사랑하려면, 자기를 부인함으로,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며, 그러려면, 너 자신을 위한, 모든 의도와, 생각과, 마음을 버리고, 청결하게 하고 지켜라." 이렇게
말이다. [마태 5장 27절~28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의 사랑은, 다른 이들을 위해, 생각하는 것 조차 조심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그를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온전한 사랑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기에, 바로, 그 기준으로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려면, 무엇으로 청결해야 하며, 또 과연 누구를 위한 사랑을 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을 위한, 거짓 사랑
자애(自愛)인가. 오직 저들을 위한, 예수의 참사랑인가.. 지금 선택해야 한다.. 예수의 사랑으로, 그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고, 지켜낸 사람에겐, 예수님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을 얻게하실 것이다.. 진정한 복은, 우리가 예수의 사랑을 그대로, 우리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 3장 19절~22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복음 15장 9절~12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