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범블란트 & 한니발 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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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범블란트 & 한니발 랙터
Level 10   조회수 211
2017-12-10 01:14:45

스물세 살 때 읽었던,

리처드 범브란트의 "새장을 벗어난 새의 이야기"

더듬어 생각하며...

 

새장을 벗어난 새의 이야기(원제 Victorious Faith)...

1990년 스물세 살의 가을,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읽었던 책 중에 하나이다.

모 일간지에 한주의 추천도서 란을 통해 알게 됐고, 동네 서점을 통해 주문해서 읽었던 책이다. 앞뒤 전체가 빨간 양장본 표지에 새 한 마리가 푸르르 날아오르는 삽화가 그려져 있는 책.. 지금도 이 책은 내 책꽂이 한편에 꽂혀 있다.

 

(먼저 이 독후감에는 15년전에 써놨던 나의 글에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이 나에게 미친 영향과 결론을 먼저 말하면, 청소년시절 성경을 통해 내게 주어졌던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다시 상기시키고, 그 깨달음을 확고히 정립하게 하는데 크게 도움을 줬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는 유대계 루마니아 인으로 스물여섯 살 때, 유대교 신앙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여 부쿠레슈티 유대계 메시아닉 교회를 세웠던 목회자이다. 독일 나치 정권하에서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수용소에 투옥됐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에게 러시아어로 번역된 성경을 몰래 배포하는 일을 하다가 19481954년 소련에 의해 공산국가가 된 루마니아 정부에 의해서 8년간 투옥됐다 풀려났지만, 5년만인 1959년 재 투옥 되어 6년간 감옥 생활을 하며, 가진 고문과 학대를 당하면서도 지하운동을 통해 신앙을 전파했던 사람이다.

 

이 책은 목차가 없이 자신의 신앙적 고백들과 자신이 감옥에서 지켜봤던 사람들의 고난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이어서 쓰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책 전체 내용과 주심 사상과 결론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첫 서두 페이지를 한 마리의 새가 죽음을 통해 새장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다는 우화로 시작한다. , “자기 때문에(자기애적인 모든 것) 살고자하는 이는 죽을 것이고, 나 때문에(다른 이들을 위한 나의 사랑과 공의) 죽고자하는 이는 살 것이다.” 라고 한 예수의 그 뜻과 의미를 담은 이야기로 말이다.

 

범브란트는 이 책에서 계속 되뇌듯 이 말을 한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자기 안에 갇혀서 길들여지고, 오직 그 공간만이 전부라 생각하며, 스스로 자기라는 새장에 고립돼서 밖을 못 보고 있는 새와 같다.” 라고..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면서 성경이 말하는 죽음과 침묵의 진정한 뜻을 깨닫게 됐다.

그리스도인이라 조건지어 부를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죽음과 침묵이 있음을 말이다.

 

나의 의지와 뜻, 그리고 나의 모든 경험들과 지식을 통해 얻어진 모든 선입견과 선지식을 죽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죽음과 침묵이라면, 그것을 대신하는 모든 것, 도저히 내 의지와 뜻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죽음과 침묵이요. 억울함을 당하고도 도리어 그를 감싸주고 대변해주려 애쓰는 것도 죽음과 침묵이요. 내게 불이익이 주어진다 해도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는 것, 그것도 나 자신에 대한 또 다른 죽음과 침묵이라고,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날마다 죽는 삶이요 진정한 침묵의 삶이라고..

 

프로이드의 무신론적 관점인 방어기재 논리로 바라보면, 이것은 자기의 보호를 위한, 또 자기의 분노를 감추기 위한, 자신을 속이는 수단이요, 합리화의 도구로 이용하는 고차원적 방법이라고 해석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진짜 뜻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상대를 위한 의도와 동기와 목적으로 말미암은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이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이다. 저 의도와 동기와 목적이 만약 프로이드의 방어기재 논리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성경이 말하는 타락의 속성이기에 거짓이요, 죄 그 자체이다.

 

또한 이것이 내가 성경과 예수로 바라보고 있는 나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실존적 모습이다. 프로이드와 칼 융이 겪고 있던 정신적 고통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의 실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범브란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한명의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천재적인 정신과 의사요, 심리학자였던 영화 양들의 침묵의 실존 인물인 한니발 렉터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20세기의 악마로 불리는 살인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시리즈인 한니발 라이징을 보면, 그가 왜 그런 살인마가 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자기 여동생을 죽이고, 그 인육을 먹었던 독일 군인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한명씩 찾아서 죽이고, 자기도 그들과 똑같이 그들의 인육을 먹었던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의 저런 행위가 어디에서 비롯되어 나왔으며, 또 무엇으로 자신의 그 행위에 대해 정당성과 합리성을 부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전공한 심리학이다.

 

과연 심리학은, 창조주의 형상을 잃은 사람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또한 과연 그것이 진정 자기 자신일까.? 그것은 바로 거짓으로 만들어진 자아로 가득한 죄악의 공허이다. 심리학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인 프로이드의 무신론적 기준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간 존재 자체로 기준을 삼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모순과 허구에 지나지 않다.

 

왜냐면, 인간 자체를 자연 발생론적 부산물로 전락시키는 무신론을 따르고, 자기 스스로 자연의 부산물로 전락시켜 놓고, 자기 자제로써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우기는 것 그 자체가 모순과 허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계속 죽어야 산다고 말씀한 그것이 바로 이런 거짓된 자기애적인 모든 허구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새장을 벗어난 새의 이야기”.. 이 책은 바로 그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고, 성경을 통한 나의 저런 깨달음을 확고히 다질 수 있게 해주었다.

 

.............

 

옛날 어떤 왕자가 생일을 맞아 아주 희귀하고 아름다운 새를 선물로 받았다. 왕자는 새의 이름을 트위트위라고 짓고, 황금으로 만든 새장에 넣어 두었다. 그러나 가엾게도 그 새는 황금 새장을 보고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어느 날 트위트위는 왕자에게 자유를 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나 왕자는 그 새를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놓아 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트위트위는 체념(諦念)한 듯 왕자에게 숲에 있는 자기 가족들을 찾아가서 비록 자기가 새장에 갇힌 몸이지만, 아직도 살아 있다는 소식만이라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왕자는 숲으로 가서 트위트위의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왕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트위트위의 여동생이 땅으로 뚝.. 떨어졌다. 왕자는 자유를 사랑하는 트위트위가 새장에 갇혔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여동생이 그만 땅에 떨어져 죽고만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슬픔에 잠긴 왕자는 궁전으로 돌아와서 트위트위에게 그의 동생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트위트위도 자기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기절을 하더니 새장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왕자는 가엾은 새를 새장에서 꺼내어 창문 밖으로 내버렸다. 죽은 새를 새장 안에 가두어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 트위트위는 푸르르 날아가서 나무 위에 앉더니 명랑하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왕자님께서 나쁜 소식이라고 생각하며 제게 전해 준 것이 사실은 제게 좋은 교훈이 되었답니다. 죽은 척 함으로서 새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 동생은 제게 가르쳐 주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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