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사랑 vs 사탄의 사랑..

예슈아의 사랑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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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 vs 사탄의 사랑..
Level 10   조회수 226
2015-12-07 07:28:53


내가 지금, 이 글을 쓰지 않고, 예수의 사랑을 통해 표징과 증거로 사탄의 계략과 술수를 지적해 말하지 않으면,
나 요나단 김성진은, 예수께 버림이 되고, 그의 사랑에서 끊어진 존재가 될 것을 알기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쓰려한다.

성경을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적으로 조금만이라도 깊이 들여다 보면, 태초부터 지금까지,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의도와 기준의 사랑이 서로를 대적하며, 공방하는 전쟁이 있어 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나님께 속한 진짜 사랑과,  둘째, 사탄이 만들어낸 가짜 사랑간의 전쟁.. 이 전쟁은 인간을 중간에 놓고 벌어진다.
어쩌면 이 전쟁은, 사람을 어느쪽이 더 많이 차지 하느냐에 있기보다, 어느 쪽이 진리 이냐를 가려내는 전쟁이다.
바로 그 전쟁에 우리 사람이 끼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사랑을 그대로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형상으로 살아가야 진짜 잘 사는 것임을 말씀 하신다. 타(他)를 위한 사랑의 형상으로..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그러한 사랑이 못마땅 하다. 이유는 자기를 사랑해 자기를 위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 했지만, 그 모든 계획이 헛수고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애(自愛)로는 결코 하나님과 같아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타(他)를 위한, 그 사랑을 거짓과 헛것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 곧 그 사랑으로 창조된 사람을 공격한다. 어떻게 하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전 인류를 지옥으로 끌고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진리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내서 하나님보다 자기가 타당했다고 과시하고 정당화하고 보좌를 차지하려고 말이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던, 사람에게 쏟아 부었던, 사탄의 그 모든 공격은, 바로 이것이 목적이다.

인간으로 자애(自愛)를 하게 만들어서 죄를 짓게 만들고, 그 것으로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보게 만들어서 두려움을 소유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것과 동시에, 인간의 자기됨을 상실하게 만든 그 목적..
또한, 하나님의 그 진리의 사랑을 헛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탄은 옛날부터 그 하나님을 똑바로 증거하는 이들을 수 없이 많은 방법으로 죽여왔고, 공격을 해왔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다가오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경을 통해 수없이 넘어진 사람들을 보고 있고, 현재도 그런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사탄의 저런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증을 앓게 되고, 결국 자살까지 이어지게 만들어 버린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은, '너를 위해 살면 니가 곧 하나님이 된다' 고 말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없인 여기고 헛것으로 만들려 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단적인 예가, 내게 말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진리의 사랑울, 말을 못하게 막아 버리려고, 내게 하게 하신 사랑을, 장애인이란 명목으로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해, 수 없이 방해를 해서, 사랑에 회의를 품고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해왔고,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내 죄들을 보게 해서 '너 같은 놈이 무슨말을 하냐?' 는 의식에 빠트려 내 입에서 "예수의 사랑"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나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한 개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그 진리의 사랑을 헛것으로 만드는 공격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그 진리의 사랑은, 나를 위한, 내가 목적인, 사탄의 거짓 사랑이 아니다. 오로지 상대를 위해 내가 내어주는 상대를 위한, 또 그 상대도 그렇게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사랑이다.


이러니, 사탄이 그 사람을 가만히 두겠는가.? 그 예수의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려 한다.
그 공격의 일환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와, 정치사상과, 학문과, 철학과, 과학과, 의학과, 각종 메스미디어에 속한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 삼아, 그 사람을 공격 한다. 심지어 신학과 교회의 교리를 통해서도 공격의 도구로 이용해서 공격 한다.

하나님의 그 진리의 사랑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으로 하여금, 자애(自愛)를 하게해서 타락하게 만들고, 그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을 소멸하게 만든, 그 원인체가 사탄 자신이면서도, 저 모든 도구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예수의 그 사랑은, 니가 할 수 없으니, 그 사랑은 거짓과 허상이다, 고로, 예수는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와 꾸며진 존재다."
바로 이런 의식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 속에 집어넣는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역사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화술로 만들어낸 신화속에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목적이다.
이 세상 역사속에서 예수가 살아내신 삶의 그 모습이 곧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닮은 진짜 사람의 모습이며, 그것이 곧 우리 모두가 살아내야 할 모습이 이것임을 예 표로 보여주셨기에, 사탄은 그 예수를 신화로 만들어 버리려는 것이다.

또한, 사탄은, 인간의 타락의 속성인 자애(自愛)로 말미암아 속출된 성경 해석으로 만들어진 교리들을 이용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귀에다 속삭인다.

"예수의 그 사랑은, 니가 할 수 없는 거야. 그 사랑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사랑이야. 너는 아무것도 안해도 그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만 믿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 사랑은 너를 위한 거니까, 너는 너만을 위해 살아도 죄가 아니야. 너를 사랑하시는 그 분이 니가 할 수 없는 사랑을 너에게 하라 하셨겠니, 니가 뭔가를 하겠다면, 너는 그 분의 사랑을 믿지 않아서 그런거야. 그러니 넌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이다..


내가 내 글들을 통해서 수 없이 말했듯이, 하나님도 그 사실을 사탄보다 더 먼저 더 많이 아신다. 예수의 그 진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타락한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사랑임을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과 15장에서 말씀하신다.

14장 12절~15절에 해석...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 곧 사랑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일, 곧 더 큰 사랑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서, 행함의 능력과 힘이 되시는 성령으로,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구하든, 내가 행할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계속 지켜라. "


그리고, 15장 5절, 7절~12절, 16절~17절..
예수는 말씀하신다..


5절,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그러려면.. 내안에 거하려면..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해야 하며, 그 말은 곧 내 사랑이며, 그리고 많은 일들, 곧, 사랑을 하려면..

9절~10절,12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너희는 내 사랑 안에 계속 거하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 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나의 계명들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예수님의 저 말씀을 깊이 들여다 보면, 내 안에 거하는 자는, 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이며, 그렇게 서로 사랑하기 위해, 구하는 자에게는 이루어지리라. 하신다..
너희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또,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명하는 이유는..

16절~17절..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하였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는 사탄은, 예수님의 이러한 진리의 사랑을 싫어하고 대적 한다. 왜냐면, 예수의 그 진리의 사랑으로 자기가 거짓이란 사실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타(他)를 위한 그 진리의 사랑을 헛것으로 만들기 위해, 예수를 신화로 만드는 작업을 수 천년 동안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 작업이 지금 이 시대에 와서 막바지에 이른것 같다.
각종 위협적인 거짓 사건사고들을 발생시켜놓고, 겉으로는, "화합과, 평화와, 인간애". 라는 탈을 쓰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사랑을 산택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통제하려는 수단과 방법으로 종교통합과 생체칩, 이식을 자행 하려드는, 저러한 계략과, 타(他)를 위한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무가치한 것으로 또 헛것으로 만들려고 예수를 신화로 조작하려는 사탄의 술수와 계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다를 타(他)"의 개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분명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他)를 위해 사랑하신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사랑한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이들을 내가 받았던 그 사랑의 목적과 의도와 방법으로 똑같이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으로 사랑하였는데도 그 상대가 다른 이에게 똑같이 응답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그 사랑은 지속 될 수 없고, 포기 될 수 있는 사랑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자애(自愛)는 그 최종 결과적 속성이 거짓과 자멸이기 때문에, 자애(自愛)를 하는 존재는 영존 할 수 없기에 그를 영원히 사랑해줄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자애(自愛)가 아닌, 타애(他愛)라고 한다 해서, 나와 다른 자애(自愛)를 하는 존재도 영원히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오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의 영원성은,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랑으로 똑같이 다른이들에게 응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그 사람에게만 지속되는 영원성이기 때문이다.


분명코 이것은 전쟁이다..
예수의 그 진짜 사랑과 사탄의 가짜 사랑의 전쟁...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 책임과 몫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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