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 대하여..

자유게시판

제목'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 대하여..2014-06-0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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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가 갑자기 이 생각이 나서 자료와 함께 이 글을 올린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참 많이 알려진 노래다..
저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가 1997년 11월이다..(음악저작권협회 사이트에 기록된 기록)
작사/작곡은 현재 온누리교회에서 시무중인 이민섭 목사인데, 97년 당시 그의 나이가 23세이다.
 
내가 그 당시 PC통신 하이텔과 천리안에 기독교동호회인 KCM과 CCMG의 회원이었는데,
예수전도단에 소속으로 있던 이민섭 목사도 나와 같은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997년 5월, 나는.. 당시 내가 바라보고 있던 한사람을 위해 쓴 시를.. 위에 두 동호회와 장애인yeshua 발표하게 됐다.
그 시가 바로, "사랑을 준비하는 이에게 쓰는 편지".다..
http://yeshua-ahava.com/bd.php?board=yeshuaahava&category=16&sort=wdate&command=body&no=419
이 시는 95년에 그 초안을 잡았고 완성은 97년 5월이다. 이 시가 공식적으로 출판을 통해 세상에 첫번째로 인증 됐던건
다음해인 98년 6월인데, 아래 사진에서 내가 들고 있는 기독교문학모임의 회원문집을 통해서다..
 
이 책에서 내 시의 시평을 쓴 임병남 전도사도 글에서 언급했지만, 저 책을 출판하려고 약 1년을 준비하는 중에 동호회 게시판에
그동안 내가 올렸던 글들이 사라진걸 발견하고 임전도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내 시를 허락을 받고 책에 넣으려 한다면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해서 수락을 했고,
그렇게 해서 98년 6월에 저 책이 나오게 됐다.
 
지금에서야 얘기지만, 저 책을 받아본 순간 나는 의야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에서 보듯 책의 뒷표지에 바로 저 시에 첫구절이 들어가 있었고, 책 전체에서 내 시들을 맨 앞에 넣어놨기 때문이다.
그리 매끄럽거나 수려한 문채도 아닌데 왜.? 라는 의문이 지금도 들기에 말이다.
 
그러고나서 3년후인 2000년 중반, 난 집안 상황과 개인 사정으로 침체되어서 은둔생활 아닌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고,
라디오든 TV든 듣고 보는게 다 싫어서 전부 끊고 있던 어느날 우연히 저 노래를 cbs방송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사와 멜로디가 참 곱다는 생각을 했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약 1년후 다시 들었을 때.. 왠지 내 시와 중첩되면서 정 반대로 상이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사를 내 시와 비교해서 분석을 해보았다.
그 결과 저 노래는, 내 시를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서 말을 바꾼 가사란 걸 발견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사자인 이민섭 목사가 저 노래를 쓰던 당시 나와 같은 동호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그 때 알게 되었고, 저 노래를 만yeshuaŠ” 97년 11월에 자기 아는 사람의 결혼식 축가로 쓰려고 만든것이란 것과,
또하나, 윹eshua떤 계기에선가 이 목사가 저 노래의 저작권을 포기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내 짐작이지만,
이 목사가 그 노래의 저작권을 포기한 이유가 혹 2003년 3월에 최아무게씨 사건으로 생겼던 다음카페에 올린 내 글과 저 시를 보고
그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때 올렸던 글에 이 내용을 보고서 말이다.
 
http://yeshua-ahava.com/bd.php?board=yeshuaahava&category=10&sort=wdate&command=body&no=1173
"저작권 포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찬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그 원천은
결코 덕신님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을 제공한 것은 예수이시고 성경이니까 말입니다...
아니 그런가요...?
저도 그것을 알기에, 누군가 제가 써놓은 글을 가지고 여기저기 뜯어 고처서
찬양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도 하나님께 감사 드릴뿐, 아무말 않고 있는 거구요...
"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바로 나의 저 시를 올렸고, 일주일 후 그 카페를 폐쇄하겠단 공지가 떴다.
 
양쪽의 저작 시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표절내지는 말을 바꿔 썼다고 말 할 것이 분명하다.
허나, 저 노래가 음반으로 처음 발표 됐던 시기를 알면, 내가 저 노래를 듣고 썼다는 말은 못 할 것이다

아래와 같이 갓피플쇼핑몰에서 음반 출시일로 검색해 봤다.
갓피플 검색결과 바로가기 <= 클릭
저 노래가 만들어지고 약 1년 후인 1999년 1월부터 1년에 걸처 저 노래를 세명의 ccm 여가수가 따로따로 비슷한 시기에 테잎에 담아 출시 한다.
최인혁씩의 부인인 '김지애'씨. 찬양하는사람들의 '이정림'씨, '러브'라는 세 사람이다. 그 이전엔 음반으로 저 노래를 부른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날짜로 따지면 99년 1월에 '러브'가 제일 처음 저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한다.
 
자, 여기서 계산이 나오지 않는가.?
내가 저 노래를 듣고 저 시를 썼다면, 98년 6월에 출판된 저 책에 나의 저 시가 어찌 수록이 됐을까.?
내가 비장애인으로서 자유롭게 찬양집회를 참석할 수 있었다면 음반으로 나오기 전에 저 노래를 들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전동휠체어가 있기전 나는 교회 출석 조차도 혼자는 불가능 했던 사람이다.
1998년 당시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계셨기에 그 이후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하나, 이 목사는 예수전도단 출신이다. 그런데 이상한건 예수전도단에서 98년 12월에 악보집이 나오고 딱 1년 뒤인 99년 12월에
찬양집으로 내놓은거 말고는 그 98년 12월 이전엔 출판물이든 음반이든 저 노래를 수록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감잡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명심할 것은 누가 먼저냐를 따지겠다는 말이 아니다.
저 노래 가사를 가만히 들어보라. 세상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게 써놨기에 드라마에서도 하나님이란 말은 빼 버리고 축가로만 부른다.
저 가사에는 내가 할 사랑은 없고, 전부 사랑 받기 만을 바라는 내용이다.
다시말해 내가 해야 될 예수의 사랑은 없고, 사탄의 거짓 속임수에 세상을 넘겨주는 자애(自愛)의 노래란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만을 생각하게 먼들고 자기만을 사랑하게 만드는 은사주의자들의 노래라 이 말이다.
성경 똑바로 보자. 성경 어디에 저런 의미의 구절이 있는지...
 
여기서 나의 시의 5단원부터 저 노래의 가사를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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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의 창조자
그는 우리에게 누구입니까?
자신을 나누고픈 사랑을 견디지 못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를 있게 한 그는
우리로 사랑케 하는 사랑입니다.

그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주고, 주고, 또 주고
그 사랑 되돌아오지 않아도
나 아닌 다른 그 누군가를
사랑케 하는 사랑입니다.

나의 창조자 그에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생(生)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건
우리의 생과 삶
그리고 우리의 존재 자체는
나의 창조자 그에겐
가장 큰 의미의 기쁨입니다.

6.
지금
그대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나의 창조자
그의 사랑의 모습 그대로 있게 된
그대와 나는
그를 닮은 또 다른 모습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구이어야 합니까?
나의 창조자 그를 닮은
우리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사랑해야 될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나의 창조자 그의 사랑처럼
끊임없이 누군가의 생과 삶
그리고 누군가의 존재를,
그대로의 존재를
기뻐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또다시 그 삶은
끊임없이 나를 누군가에게 내어주기 위해
자기로부터
끝없는 여행을 떠나며 준비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7.
사랑을 준비하는 이여
우리의 사랑은
서로에게 존재의 기쁨이 되어주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창조자 그 처럼
서로를
그리고 나 아닌 그 누군가를
사랑케 하는 일만을 남겨 두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은
사랑=삶=또 다시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나의 창조자 그에게서 얻은
나의 물음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찾으려 애쓰던,
나의 나됨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어린 날,
하늘이 내게 가르친 하나의 사랑입니다.

그대,
삶을 묻는 이,
사랑을 묻는 이여,
그대에게 주어진
존재와 사랑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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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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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둘을 비교해보자.
나의 시에서 나는, 사람은 사랑받기 위한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 곧 그 사랑을 닮은 존재들이기에 그의 사랑처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기뻐)하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끝없이 벗어나야(끝없는 여행)할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저 노래는 첫 소절부터 완전히 뒤집어서 말한다.
 
내 시 5단원의 첫부분인 창조주 하나님에 표현을 저 노래 두번째 소절에서 말을 바꿔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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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조자
그는 우리에게 누구입니까?
자신을 나누고픈 사랑을 견디지 못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를 있게 한 그는
우리로 사랑케 하는 사랑입니다.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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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 5단원 세번째 부분을 저 노래 세번째 소절에서 또다시 말을 바꿔서 표현 한다..
그런데, 내가 저 시에서 저 표현을 쓴 이유는, 다음 단원을&nbsyeshua 위해서 쓴 표현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의 존재로써 이미 yeshuaž‘을 다 받고 있는 존재들이기에 자기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없고,
그의 사랑의 모습 그대로를 닮은 우리도 그와 똑같은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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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조자 그에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생(生)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건
우리의 생과 삶
그리고 우리의 존재 자체는
나의 창조자 그에겐
가장 큰 의미의 기쁨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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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노래의 끝부분은 어디서 왔을까.?
94년 봄에 쓴 "기도를 위한 기도" 를 읽어보라.
http://yeshua-ahava.com/bd.php?board=yeshuaahava&category=16&sort=wdate&command=body&no=418
 
임병남 전도사가 저 시에서의 기도는 사랑을 말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다.. 저 시의 기도는 사랑이다..
저 기도 시에 끝 부분을 저 노래의 끝 소절로 말을 바꿔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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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그리하셨고
내게도 그리하게 하신 것처럼
언젠가 그도 또 다른 그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가슴으로 기도할 그 때긹eshua를 위한 나의 기도가
멈추지 않게 하소서
지금도 당신이 나를 위해 그리하듯이‥‥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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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연 우연일까..?
나는 묻고 싶다. "어느것이 성경적이고, 또 어느것이 복음적이냐?"고 말이다..
혹자들은 저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있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허나..
저 노래에는 진짜 사랑이신 예수의 사랑은 없다.. 저 노래는 두번째 소절 그대로 결혼식 축가일 뿐이다.
나로 하여금 진짜 사랑을 하도록 하시는 예수의 그 사랑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오죽 저 노래가 복음적이 아니었으면 "또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라는 답가를 다른 사람을 통해 쓰게 하셨을까.?
 
잊지말자..
예수는, '사랑 받으라' 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 사랑을 이미 받았기에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 하셨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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