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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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말라..
Level 10   조회수 30
2015-07-17 10:30:24

** 모든 일을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말라. **

 

우리가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언급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 성령을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특징 중에 가장 크게 부각되는 부분은, ‘소유와 노동의 공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역판 성경들이 이 부분을 주의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신다.’는 번영신학 때문에, 원문의 진정한 뜻을 잘못 알아듣게 번역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431~35절을 킹제임스성경현대어성경’, 그리고 여러 다른 번역본으로 보면, ‘주의 일을 해서 은혜를 받아 부자가 됐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킹제임스성경, 4:31~35]

4:31 그들이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 진동하더니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더라.

4:32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한 마음과 한 혼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주장하는 자가 없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쓰니라.

4:33 그리하여 사도들이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더라.

4:34 그들 가운데 아무도 부족한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토지와 가옥을 가진 많은 사람이 재산을 팔아서 그 대금을

4:35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으면 각자 필요한 대로 나눠 주었기 때문이라.

 

[현대어성경, 4:31~35]

4:31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크게 흔들리며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4:32 모든 신도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누구하나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4:33 사도들은 주 예수의 부활을 자신 있게 설교하였고 신도들끼리는 뜨겁게 사랑하였다.

4:34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으며 사도들은 그것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4:35 (34절에 포함되어 있음)

 

33절 끝 부분을 개역판들과 비교해 보시면,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3절의 은혜라는 말은, 부자가 되는 은혜가 아니라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인 서로 사랑하게 하는 그 은혜를 말씀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서로 사랑하게 하는 은혜가 예수를 따르는 각 사람들에게 주어졌기에,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게 됐고, 부자였던 사람들에게도 그 은혜가 임하였기 때문에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다 놓으면, 사도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그로 인해서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이 말씀입니다. 그 은혜가 요셉(바나바)에게도 임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나누게 했던 겁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자애(自愛)로 가득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을까요.? 인간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 방법은 똑같지만, 의도와 목적은 다른 일로 행해 질 수는 있겠죠. 그것이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행위입니다. 저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재산을 정리해 가져왔을까요.? 성경을 아무리 봐도 남을 위한 목적으로 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군중심리와 타인에 대한 내 이목과 채면 그리고 칭찬과 자기 과시로 사람들 앞에 거들먹거리기 위한 방법과 수단으로 이용하려고한 의도와 목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의도적 행위 자체부터 거짓이긴 해도, 재산 전부 가져왔노라고 거짓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겁니다. 베드로의 표현 그대로 내 재산인데 많든 적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가져와서 같이 나누면 되는 것을, 전부라고 거짓말을 한 것 자체가 위에 언급한 저런 의도와 목적을 엇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저런 의도와 목적의 행위는 결코 성령 받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의 일일뿐입니다. 그런데 용서와 사랑으로 죽일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고요.? 과연 저들을 하나님이 죽이셨을까요.? 아닙니다. 현대 의학적으로 쇼크사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속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던 겁니다.

오늘날, 안수집사/권사/장로의 직분을 돈을 받고 내주는 현대 한국 교회들이나 그것을 얻기 위해 돈을 내는 교인들이나 현대판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닐까요.? 누구를 위한 행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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